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수아 다를랑 (문단 편집) == 최후 == 판무관이 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1942년 [[크리스마스 이브]]에, 다를랑은 그가 집무실로 쓰던 알제리 여름 궁전에서 언론인의 아들인 20세의 페르낭 부니에 드라샤펠(Fernand Bonnier de La Chapelle)이라는 청년에게 총격을 당했고, 몇 시간 뒤 숨졌다. 왕정 복고주의자였던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26일 [[총살]]되었다. 이 사건의 배후에 [[샤를 드골]] [[장군]]이 있다는 의혹도 있다. 드골 장군의 입장에서는 군 계급으로나 인망으로나 넘사벽으로 드골 장군을 압도하는 다를랑 제독이 연합군 측으로부터 드골 장군 대신 [[자유 프랑스]]의 최고수반으로 인정받을 위험성 때문에 제독이 죽어주기를 바랬을 것이라는 얘기다. [[파일:external/ww2gravestone.com/image067_6.jpg]] 알제리에 남아있는 다를랑 제독의 묘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